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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수지리의 역사와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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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1-09[23:59], 조회 : 6227, 추천 : 842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또는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자기가 생활할 터전을 찾는 데서부터 풍수지리의 발생 동기가 되었습니다. 원시사회에서 좋은 자리를 찾으면 먹고 쉬고 자는데 편리했을 뿐만 아니라 적으로부터 자신과 동족을 보존하고 번창시키는데 용이했기 때문입니다. 풍수지리학의 기원은 상고시대까지 소급해 가지만 초기 형성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론 면이나 응용 면에서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약2000여 년 전 중국 후한(後漢) 때 음양이치에 통달한 청오자(靑烏子)라는 사람이 풍수지리의 원전(元典) 격인 '청오경(靑烏經)'을 저술하여 반포한 것이 풍수지리학의 역사적 기원입니다. 청오경의 내용은 음양이법과 생기와 산의 형상에 대해서 매우 간결하고 문장 한구 한구를 비결이나 격언처럼 열거해 놓아 읽는 것만으로는 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여러 학자들이 청오경을 해석해 놓은 책이 많이 있는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서적: 최창조, 청오경.금낭경, 민음사)

그 뒤 400년 후 진나라 사람 곽박(郭撲)이 청오경을 인용하여 저술한 '장서(葬書)'가 나왔는데 풍수지리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내리고 풍수의 이론과 실천을 전체적으로 기술함으로서 풍수지리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이 장서를 '금낭경(錦囊經)'이라고도 합니다. 그 어원은 당나라 황제 현종이 지리를 잘 아는 홍사(泓師)라는 신하를 자주 불러서 산천의 형세를 물어보았는데 그 때마다 홍사는 장서를 인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현종이 홍에게 그 책을 요구하니 홍사는 책을 받치면서 이 책은 세상에서 귀한 책으로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비보서(秘寶書)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현종은 이 책을 비단으로 만든 보자기인 금낭(錦囊)에 넣고 다시 장롱 깊이 넣어 보관했다고 하는데서 유래되었습니다.(참고서적: 최장조, 청오경.금낭경, 민음사, 오상익 주해장경, 동학사)

그 후 우리나라 통일신라시대에 해당되는 당나라 때는 모든 문화가 찬란하게 꽃을 피웠는데 풍수지리학도 마찬가지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이 때는 간단한 나경(패철)을 이용하여 방위와 좌향(坐向)을 측정하였고, 복응천(卜應天)은 설심부(雪心賦)를 구빈선생(救貧先生) 양균송(楊筠松)은 청낭경(靑囊經)을 지어 그때까지만해도 한낱 술법으로 전해 내려오던 풍수지리설을 정리하여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립하였습니다. 특히 양균송은 팔십팔향법(八十八向法)을 정리하여 오늘날까지도 묘나 집의 좌향을 결정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풍수지리학의 시조인 도선국사의 스승이라고 알려진 장일행(張一行)은 곽박의 장경을 해석하면서 나라의 땅을 화식지지(貨殖之地: 재화가 많이 나는 땅), 용문지지(用文之地:문사가 많이 나오는 땅), 용무지지(用武之地: 무관이 많이 나오는 땅)등으로 나누어 자연 환경을 관찰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려말과 조선 중기에 해당되는 명나라 때의 풍수지리학은 오늘날의 풍수지리 학계에 깊은 영향을 끼치었는데, 협소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폭넓은 수용자세로 연구가 활발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구성법(九星法)'의 응용으로 이기론(理氣論) 분야에 새로운 학설을 개척하였습니다. 또 나경(패철)학설의 발전으로 더욱 세밀한 부분까지 묘 자리와 집터를 측정하여 시간과 공간을 서로 연관성 있게 다루었습니다. 이 당시 서선술(徐善述), 서선계(徐善繼) 쌍둥이 형제는 풍수에 관한 여러 책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는데 오늘날 모든 지리서의 지침서가 되고 있는 '인자수지(人子須知)'입니다. 이 책은 각 항목마다 적당한 실제 사례를 들어 놓은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조상 묘를 직접 관찰하여 이론과 실제 상황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면서 저술하였습니다. (참고 도서: 김동규 역, 인자수지, 명문당) 조구봉(趙九峯)은 고금의 여러 명저와 명록을 정리하여 풍수지리를 용(龍),혈(穴),사(砂),수(水),향(向)으로 정리한 '지리오결(地理五訣)'을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중기 이후에 해당되는 청나라 때의 풍수지리학은 택일(擇日)에 의해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조명택일(造命擇日) 방면을 중요시 여기면서 장택론(葬擇論)을 발전시켜 왔습니다.(참고도서: 천기대요, 명문당, 신광주 정통 풍수지리학 원전 제3권 장택론편) 이 당시 왕도형(王道亨)이 작성한 '나경투해(羅經透解)'는 나경패철의 사용 방법과 원리를 해석한 것으로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모든 나경패철의 지침서가 되고 있습니다.(참고도서:신평, 나경연구, 동학사, 신광주, 정통 풍수지리 원전 제1권 나경론편, 명당출판사)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풍수사상이 전개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 고유의 자생적 풍수가 발생하였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4대 왕인 탈해왕이 집터를 잘 잡아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분 벽화에는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의 사신도가 그려져있으며, 당시 건설된 고찰의 지형지세 등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 초기부터 국가 경영과 국민의 생활 편리에 풍수가 실용화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의 자생 풍수가 중국 풍수의 영향을 받은 것은 통일 신라 말기로 짐작되는데 왜냐하면 당시 선종 계통의 승려가 당나라에 유학을 하고 돌아오면서 풍수설을 배워와 일반 대중을 포교하는 방법으로 활용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도선은 이를 우리의 자생 풍수와 접목하여 풍수지리를 집대성 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풍수설 그리고 도참사상이 사회를 이끈 주도적 사상이었습니다. 태조의 훈요10조에는 풍수적 사고 관념이 잘 나타나고 있는데 "제2훈 절의 터는 도선이 산수의 순역을 보아 앞으로 일을 예견하고 자리를 잡은 것이니 다른 곳에 함부로 사찰을 창건치 말라" "제5훈 고려의 개국은 삼한산천의 음우를 받아 이룩된 것이며 서경(평양)은 수덕이 순조로워 나라 지맥의 근본이므로 왕이 수시로 순례하여 머물러야 나라의 안녕이 유지된다." "제8훈 금강 이남의 산형지세가 배역했으니 인심도 그러할 것이므로 그 쪽 사람들을 중용치 마라."하였습니다. 고려시대의 풍수설은 주로 승려들이 담당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도선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도선의 저술로 알려진 비기(秘記)에 의하여 자신의 주장을 하였습니다. 묘청은 서경천도설을 주장하였고, 공민왕 때 승 보우는 한양천도설을 주장하였고, 신돈은 충주 천도설을 주장했습니다. 후에 나옹선사와 제자 무학대사는 조선 개국을 도왔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불가에서뿐만 아니고 유가에서도 많은 풍수 명사들이 나왔으며 이성계가 역성 혁명에 성공하자 정권찬탈의 당위성과 민심수습을 위하여 풍수지리설을 이용하였습니다. 유학을 정치이념으로 내세웠던 조선조에도 풍수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져 음양과를 설치하여 과거시험을 통하여 지관을 뽑았습니다. 또한 사대부가에서는 풍수지리학을 모르고는 행세할 수 없었으며 선비나 승려들 사이에서도 기인이나 도사들이 많이 나왔으며 민간에서는 풍수설이 신앙화 되어 음택이 널리 유행되었습니다. 그러나 풍수지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지나쳐 명당을 찾아 부모를 묻어 부귀영달 하려는 이기적인 방법이 팽배해졌기 때문에 묘지를 둘러싼 폐단이 심해져 정약용, 박제가 등의 실학자들은 그들의 저서를 통해 풍수의 폐단을 지적하였습니다.

근대 개화기 들어 계몽파 들은 풍수지리설을 크게 비난하였으며, 일제 점령기에는 미신으로까지 규정되었습니다. 일제는 풍수지리가 미신이라고 언급하면서도 그들의 식민지 통치를 위해 철저하게 풍수를 이용하였습니다. 총독부가 중심이 되어 전국의 풍수 자료를 수집하여 명혈의 지맥을 자르고 정기 맺힌 명산에 쇠말뚝을 박는 등 조선 민중들로 하여금 패배의식에 젖도록 하였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다시 풍수지리가 활발하게 연구되고 도시 계획 등에 응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간 된 풍수 서적은 학문적으로 체계가 정립된 것은 없고 산서나 결록, 비기 등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실제로 산천을 돌아보고 전국 각지의 풍수적 길흉을 기술한 '도선비결' '옥룡자 결록' '답산가' '무학결' '남사고결' '박상희결' 등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지방 사대부가나 객사 사랑방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비결, 결록, 답산가, 산도 등이 많이 있는데 황당무계한 것이 적지 않아 여기에 현혹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한편 일제 때 조선 총독부는 그들의 식민지 통치 자료를 얻고자 전국적인 행정력을 동원하여 총독부 촉탁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이 보고서 형식으로 조선 풍수설에 대한 방대한 자료집을 책으로 엮은 '조선의 풍수'가 있습니다. 이 책은 비록 순수한 연구 목적의 책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최초의 풍수설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로 오늘날 한국풍수지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참고도서: 최길성 역, 조선의 풍수, 민음사)

현재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풍수지리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연구 자료가 발표되고 있으며 서적 또한 많은 주제와 내용으로 발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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